울적한 프롤로그
그녀와 약속한 시간이 이제 8시간 남았다.
키방 달리머에게 약속이라는 것, 그것도 은퇴의 약속이라는 것이
무에그리 큰 의미가 있겠느냐고 ㅋㅋㅋ- 헛웃음을 웃어본들 어쩔수가 없다.
왠지 <반드시> 그래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고 밖에는..
더 할수 있는 말이 없으니까.
나는 여지껏 그렇게 그녀와의 약속을 기억했다.
약속은 약속.
사람과 사람과 사람이 서로 교합(咬合)을 잘 이루지 못해
항상 어긋나는 것이 바로 <이 바닥의 생리>라고 하지만, 나는 믿어본다.
이 바닥이 내게 진실담긴 어마무시한 무언가를 휙- 던져줄 것이라는
밑도끝도없는 우스운 믿음이 아니라..
그녀가 내게 남기고 떠난 은은한 잔향에서 늘 아련하게 피어나는 느낌 중에
반드시 믿음에 대한 댓가처럼 어떤 것이 종내에는 나를 찾아오게 될거라는..
그런 믿음을.
나는 그로인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집중할 수 있었고..
또 떨어져 나갈땐 속시원히 고리를 끊어내었다.
매번 쉽지않은 금단현상이 날 괴롭히고, 들뜨게 하고,
집요하게 마음을 흔들어 놓았지만..
글쎄, 어쩌면 그녀와의 약속보다 우선한 <현실>이 날 그리 만들었고
오랜 버릇마냥 길들여진 발걸음을 묶어 놓았는지도 모를 일이지만서도.
모든 것이 그녀의 공(功)인양, 설명하는 모양새가 남보기엔 탐탁치 않을라나..
끝을 향해 고개를 들었을 때, 이제 10시간도 채 남지않은..
나에겐 나름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들중 2시간을 누굴 보는데 써야 할까,
며칠을 두고 고민도 하고, 계획도 세워보고, 별별짓을 다 해보았으나 ㅎㅎ..
끝내 터져나오는 것은 <다 알고 있었으면서->라는 자조섞인 탄성 한소절
- 그렇게 열심히 인계동을 뛰어 다닐때도 그랬지 않았나 말이다 -
예약이란 것이 항시 내맘대로, 내뜻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 헛된 기대를 하고 있었다니!!
난 解離를 만나러 간다
그대들은 <계영배(戒盈杯)>를 알고 있는가.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 채워 마시지 말기를 바라며, 너와 함께 죽기를 원한다.”
잔의 7할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 버려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라는.. "과욕하지 말지어다"
"그럼.. 네가 그 유명한(?) 그 애였단 말야..?"
"유.. 유명하다뇨..;; 그럴리가..;;"
"와아.. 대박.. 되게 궁금했고, 보고싶었었는데.. 네가 그 아이였다니.."
"그때완 많이 달라졌어요.."
"이리 가까이 와봐.. 어디 좀 보자.."
'엄훠 왜 이러세요..' 라는 대사는 나오지 않았다, 당연히 ㅋ
"부끄러운데.."
"아냐.. 너 참 이쁘다.. 매력있어.."
"잠을 못 잤더니 머리가 많이 아파요.."
"저런.. 편두통인가보다.. 약 먹어야지.."
"끝나고 나가서 먹을 거에요."
"괜찮겠어? 아프면 즐달 못하는데~"
"아녜요 ^^*.. 참을 수 있어요.."
이 아이는 인내(忍耐)의 미학을 아는 아이.
절치부심(切齒腐心)의 옹색함이 아닌,
은인자중(隱忍自重)의 미덕을 몸과 마음에 품고 사는 아이.
때론, 이유를 알 수 없는 서글픔과
애처로운듯 격한 분노에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못난 우리의 세대의 자화상(自畫像)마저도
미워하지 않고 포근한 가슴으로 품어줄 아이.
解離야.. 누군가 잘 지어준 네 이름처럼,
나는, 너라는 따뜻한 봄날의 꽃정원 속으로
나누어져 녹아들어 解離되고 마는 햇살 같구나.
널 알게된 내 마음이.. 그런 햇살이 된듯 하구나.
어딘가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또 언젠가는 만나겠지 우리..
어딘가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동안에도
기억 한조각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거지.
머리가 아픈 널 쉬게 해주지 못한
내 어리석은 욕망도 잠시, 하루가 지나고 나면
이렇게 못 해준걸 후회도 하고 안타까워도 하는데
그렇게 뼈저리게 느끼고 깨달았던 인계동의 법칙,
<욕심을 반으로 줄이면 기쁨은 배가 되리라>
그걸 또 깜빡 잊고 내 욕심만 부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하루종일 담배만 피우게 돼.
늦게나마 '두통약'이라도 사다주고 올걸.. 하고 말야.
비록, 직접 찍은 사진 한장 없는 후기지만
얼굴은 몇점, 몸매는 몇점, 연기력은 몇점..
그런 홍보 효과도 일절없는 비루한 후기지만
解離야.. 꼭.. 잊지 않았으면 해....
내가 너에게 들려주었던 나의 이야기들..
다음번 우리 만났을 때,
네가 나에게 꼭 들려줄 너의 이야기들.. 과 함께
우리가 나누었던 애틋했던 숨결들을.
<에필로그>
자기 만족을 위한 일방적 강요에는 항상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지요.
즐달을 하려거든, 반을 내어주는 나름의 희생정신(?)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남은 반틈으로 상대방의 애틋함, 그 절반이 들어와 채워질테니까요.
그녀도 즐겁고 나도 즐겁고.. 그녀도 부담없고 나 역시도 편한.. 그런 흥겨운 달림.
세상에서 <배려>라고 하는 것은 아마도, 사람이란 동물만이 할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교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